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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미드소마 Midsommar (2019) 줄거리 및 후기: 힐링물인가 공포물인가 봐봐요
    카테고리 없음 2020. 2. 21. 04:06

    영화 미드소마를 보고 왔다. 사실 1주일 1전체 부지고 보네를 드는 정말 벼르다가 못 봤는데... 묘한 우연인지 엊그제, 어제 연속으로 만난 친구마다 미드소마 꼭 봐!라고 영업을 해서 결스토리 짬짬이 보아왔다. 개봉관도 많지 않고 지하철로 30분을 가가 되어서야를 봤는데 여러가지 역대급입니다. 정 스토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스토리 영화관에 자신감이 생겨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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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영화냐, 힐링영화냐? 어떤 사람들은 공포물로 누군가는 치유물이라도 보고 있다고 하더라.(둘 다 사람의 심정을 깊이 이해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리 에스터 감독의 천재성? 혹은 인문학에 대한 조예에 박수를!) 자신은 둘 다 다르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공포는 아니다. (공포라기보다 신랄한...?) 그렇다고 힐링 영화도 절대 아닌 것 같다. 나중에 자세히 얘기하지만, 자신은 대니가 영화 속에서 얻은 힐링이 진짜가 아니라고 소견하니까...するから그렇다면 미드소마는 어떤 장르인가? 굳이 굳이 자기 말은 못 하지만... 자신은 미드소마가 인간의 기분을 매우 예리하게 포착한 영화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한 드라마 정도로 장르를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데. 솔직히 이런 장르로 규정하려는 것도 불필요한 외모 같다. 굳이 그런 일을 하자면 자기들끼리만 판단하지 않아도 미드소마는 충격적이었다.여러모로 대히트였다, 그러면서도 "아, 이건 꼭 글로 소감남겨야지..."라고 생각한 미드소마! 한번쯤 볼 만한 영화다. 꽤 자신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보곤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권태를 맞은 연인의 toxic relationships를 이렇게 잔혹하게 극단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찌 보면 진부한 소재지만 신비로운 스웨덴의 하지축제 미드소마와 잔혹한 홀이 공동체를 끼워 넣으면서 정말 색다르게 변했다! 영화가 된 것 같다. 재관람 의사도 있다. 요즘은 영화관이 많이없어서 힘드실텐데... 조만간 감독판이 한국에서 개봉했으면 좋겠다. 꼭 다시 보러 갈텐데! 다만 호불호가 정말 극단으로 갈리는 영화라서 추천은 할 수 없다.😂


    *에 이은 이야기 소개 및 리뷰에는 진실결국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및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대니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에 의해 오랫동안 시달렸다. 게다가 반갑지 않아 남자 친국 크리스티앙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다. 대니는 크리스티안이 "나쁘지 않아"에 질렸다는 것을 반쯤 실감하고 있다. 4년 반을 사귄 두 사람이지만 이미 기독교는 1년 이상 대니와 헤어질지 이야기함을 가늠한 형국입니다. 이미 파국에 이른 관계를 끈기있게 잡고 있는 것은 아이정이 아니라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견딜 만큼 멘탈이 단단하지 못한 대니의 집착이 아니라 우유부단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크리스티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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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대니의 남동생은 잠든 부모를 중독사시키고, 좋든 춘추가 끝난 긴 호스에 입을 다물고 자살합니다.(이때 죽은 동생의 모습을 적행정부에 비추는데, 이것도 은근히 그로테스크하다...) 소식을 들은 대니가 찢어질 정도로 오열소리가 난 현악반주처럼 영화의 괴이한 분위기를 띄운다. 이렇게 해서 대니는 한동안 대가족을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평온하게 크리스티앙 친구를 사귀는 듯하다가 누군가 대가족 얘기를 꺼내면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이때 크리스티앙의 친구 펠레가 크리스티앙을 스웨덴으로 초대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펠레는 '홀이 '으로 불리는 작은 공동체 출신으로 좋아하는 고향 헤루 신구 그랜드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지 않는 기간 중 90년에 한번 9일 열리는 특별한 축제가 열린다며 크리스티안과 그 친구들을 초청한 것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상태에서 크리스티안을 혼자 보내지 못한 대니는 모두 헬싱랜드로 가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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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 조쉬(인류학과 대학원생), 마크, 그들을 초대한 펠레, 그러기에 대니는 스웨덴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에는 또 다른 홀가 출신 잉그마르가 데려온 영국인 커플 코니와 사이먼이 있었다. 외지인 6명(대니, 크리스티안, 조쉬, 마크, 코니, 사이먼)와 마을이 이 충의게 오는 특별한 축제 때문에 마을을 방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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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녹지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외지인들을 기쁜 듯이 맛메우는 홀 가인들, 그 때문에 밤 9시에도 한가로운 날씨는 동화처럼 알프다프키 뿐이지만 여기서도 대니의 트라우마는 변함이 없다. 그곳에 도착해서 크리스티안과 크리스티안 친구들은 큰 돌을 던질 것이다. 이때 대마초 기운에 취해 우리 모두 한서 가족 같다는 펠레의 말에 역시 한번 소가족이 떠오른 대니는 복받치는 상상을 이기지 못하고 뛰어다닌다. 그래서 무서운 환각까지 보고 결국 기절하지만 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은 반나절 만에 풀밭에 쓰러져 있는 대니를 발견할 것이다. 크리스티안의 무관심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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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락인 마야가 당당히 크리스티앙에게 관심이 있다는 기색을 느끼면서 크리스티안은 대니의 삶 하나 까먹는다. 헬싱그 랜드에 도착한 날은 대니의 삶 1개였지만, 펠레가 언질을 주고, 나중에 깨닫고 급조의 케이크( 같지도 않은 빵)축하하려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이제 둘의 관계가 오래 전에 끝났음을 암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대니는 아무렇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크리스티안과 그의 절친한 친구들에 동화되기 위해 애기를 많이 쓴다.


    한편, 그렇게 시간은 흐름축제의 하루가 찾아온다. 펠레는 이날부터 특별한 의식이 시작된다고 내용이다. 하루 있는 의식은 "벼랑". 외지인들과 마을 사람들은 전체 한 테이블에 모여서 밥을 먹는다. 이 날의 밥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비장한 표정의 노인 두명이 자리에 급의까지 모든 사람은 부동 자세로 침묵을 지키다. 두 노인이 자리에 급은 식기를 들자 비로소 조용히 밥이 되게 됐다. 밥을 먹은 뒤 두 노인은 의자에 실려서 절벽 위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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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에 오른 노인들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신기한 의식을 치른다. 칼로 서로의 손을 베고 돌 앞에서 절한 뒤 푸른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영문도 모른 채 이 상황을 지켜보는 침입자 앞에 절벽 앞으로 걸어간 뒤 나빠진 여노인이 보인다. 설마 설마.. 극장에서 지켜보는 관객도, 외지인도 모두 불안한 예측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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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외부인의 눈앞에서 여노인이 먼저 뛰어내린다. 카메라는 저 높은 벼랑 위에서 뛰어내리는 노인의 모습을 아주 멀리서, 어떤 클로즈업 없이 평온하게 담는다. 그녀는 아래에 있던 거대한 돌에 머리를 부딪치고 그대로 즉사합니다. (이때 정면에서 돌에 부딪쳤다 노인의 1에서는 머리 모양을 그대로 보이지만, 너무 징그럽다...)​ 무슨 일인가 하고 바로 끊고 하라, 엉엉, 영국인 커플에 아랑곳 않고 의식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남자 노인이 뛰어내립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지상에 떨어져 즉사하지 못하고 발만 망가진다. 끔찍하게 갈라진 좋아하는 발을 바라본 노인의 얼굴은 고 허가 두려움에 1 그렇지. 1에서는 세수 파챠크소 담아내는 카메라를 지켜보는 노인의 핏발 선 눈에 비친 것은 죽 소음을 앞둔 사람의 공포 1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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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지 않은 노인의 아찔한 몸부림을 보며 홀가인은 모두 절규한다. 마치 망가진 노인의 고합격 공포를 공유하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 속에 망치를 든 홀가인이 노인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줄거리를 쓸 틈도 없이 죽지 못한 노인의 머리를 때린다. 한번의 1격에 노인의 얼굴은 곧바로 형태를 알 수 없게 무 자네 된다. (정 스토리는 무자네가 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이것이 왜 사람의 얼굴 1수 있니? 보고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얼굴, 그래서 망치에 뼈와 부딪혔을 때 나쁘지 않은 푸ケット 하는 섬들의 소리가 너 괜히 나쁘지 않게 약간 이겼다...) 다소 따라간 두 사람이 차례로 노인의 얼굴을 내리친다.그토록 처참하게 부서진 두 시신 앞에서 영국인 커플은 "이는 살인"라고 말하고는 즉시는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외친다. 그들을 다소리의 홀가의 장로가 모두 문화 1뿐이라며 그 분들은 72살이 되어 생애기의 주기가 끝났기 때문에 영예에 뛰어내리지 않고 그 이야기한다. 이윽고 태어날 아기는 두 노인의 이름을 이을 것입니다.그렇게 그들의 영혼은 끊어집니다.없이 순환하면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나쁘지 않아도 72세가 되면 영예를 절벽의 의식을 치르기로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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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도 충격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다. 조금 전의 참상을 눈앞에서 본 대니는 노인의 대나무 소리에서 가족의 대나무 소리를 떠올린다. 망치 하나를 받고 깨진 노인의 두개골과 시체의 부모님 잔상을 겹쳐본다. 패닉 상태에 빠진 대니는 곧 돌아올 생각으로 짐을 싸는데, 이때 그녀를 잡기 위해 들어온 것은 그들을 이 끔찍한 축제에 초대한 펠레다. 펠레는 이것은 보통 자신들의 문화뿐이라고 예고하지 않았던 것은 미안하다며 그녀를 달랜다. 역시 마치 그녀의 머릿속에서 트라우마가 살아난 것을 내려다본 것처럼 자신도 부모가 어릴 때 불타 죽었기 때문에 수하보다 대니의 마소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줄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엔 마을 사람들이 자기 식구가 됐기 때문에 상실의 고통에 허덕일 틈도 없었다고.대니가 겨우 펠레로부터 설득되는 사이에, 홀가를 둘러싼 과인 마지인들의 이야기도 전개된다. 영국인 커플은 갑자기 사라진다. 남자가 나 혼자 먼저 트럭을 가져오겠다며 방랑당한 것만 홀연히 사라지고 뒤따라가려던 여자도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직접적으로 비추지 않는다. 단지 어느 순간 울리는 여자의 비명만이 한 쌍의 비참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장치뿐이었다 분명히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자의 비명을 들었지만, 홀가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한 가지 상을 계속해 간다. 외지인들이 홀린 것처럼 이들에게 동화돼 사라진 사람들은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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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지인을 둘러싼 해괴한 하나는 계속된다. 크리스티안이 먹은 파이에서 sound 엄마로 추정되는 뭔가가 온다. 게다가 크리스티안의 몫으로 자신에게 온 "sound료"도 다른 멤버와 색이 조금 같지 않다. 자기 안에서는 호르가 촌락에서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그에게 자신의 sound 어머니와 생리혈을 먹이는 풍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마야는 분명히 크리스티안에게 성적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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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보니 불편해 보이던 마크가 급기야 사고를 친다. 호르가인이 죽은 조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신성하게 여기는 자신의 무에 방뇨한 것... 설상가상으로 마크는 그를 가끔 분노한 호가 인의 분노한 외침에도 "아니 보통 쟈싱 다음 1뿐인데 왜 그러냐..."조금도 반성하지 않는다. 이윽고 밥 때때로 어느 홀가 여성에 호출되어 자기 동안 마크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는 마찬가지로 마크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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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으로 사라진 것은 조쉬다. 하지 축제를 주제로 조사 논문을 쓰는 방안이 있었던 조쉬는 마을에 온 순간부터 이들을 취재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절벽 위의 의식을 본 뒤 호르가인의 축제를 알아보고 싶다고 느낀 크리스티안은 조쉬가 이전에 그들을 조사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하고 괜찮더라도 호르가인에 대한 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할 것이다. 이에 분노한 조쉬는 마을 곳곳에서 더 많은 자료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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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그의 흥미를 끈 것은 곧 마을 경전. 마을 사람들이 믿는 경전은 바로 이 소년, 루벤을 통해 쓰여지는 것입니다. 루벤은 눈뜬 자로 불린다. 그렇기 때문에, 작정적인 근친으로부터 태어나 귀엽지 않은 아이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철저히 근친을 금기시하고 있지만 루벤만은 예외다. 눈뜬 사람이 죽으면 또 다른 눈을 뜬 사람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결심하고 근친상간을 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루벤'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아 깨어난 자로 경전을 쓰게 된다. 하지만 아이답게 이렇게 중대한 일을 맡았는데도 루벤은 어느 마을의 행사에도 나빠서 의식에도 참석하지 못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루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다.한편 조쉬는 경전 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만 장로들은 거절합니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아 경전을 다소 음미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조쉬는 밤중에 몰래 빠져나와 경전이 있는 창고에서 경전을 촬영합니다. 그때 그는 마크와 비슷한 무언가에 의해 둔기로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는다. (이때 마크의 모습이 결코 인간이 아닌 듯한 기괴한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마크의 표지를 쓴 마을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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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친구의 의식은 계속된다. 현재 나머지 외부인은 크리스티안과 대니 둘뿐이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메이 퀸을 뽑는 댄스 대회. 나쁘지 않은 이 젊은 여성들은 전체 수상한 차를 아무 문제 없이 누워서 마시고 메이폴 기둥 주변을 빙빙 돌며 춤을 춘다. 대니도 홀이 마을 사람들처럼 흰 옷을 입고 화관을 쓴 채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가장 끝까지 춤추는 사람이 "메이크인"이 되는 것.대니가 마을 여자들과 준비를 하는 동안 크리스티안은 장로들에게 불려간다. 그녀는 마야가 크리스티안에게 관심이 있다며 두 커플의 합격도 내려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좋을 대로 그리고 아니 이걸 다시 듣고 고민에 빠진다 크리스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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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끊임없이 빙글빙글 빙글빙글 춤을 추는 데니는 행렬 속에서 마치 완벽하게 홀가인과 동화된 것처럼 보인다. 스웨덴어를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스웨덴어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행렬에서 끝까지 남아 있던 것은 대니. 그녀는 메이퀸으로 선정된다 메이크인이 된 대니는 풍습에 따라 현지 여성들과 함께 작물과 가축을 축복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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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대니가 떠난 동안 크리스티안은 홀로 남는다. 사실 그는 대니가 촌락 사람들과 춤을 추는 동안 촌락인들이 권했던 이상한 소음료를 마신 담장에서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주위가 희미해지고 어지러운 등 이상 증세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앞에 홀연히 한 마을 여인이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게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꽃잎을 뿌려준다. 홀린 듯 꽃길을 밟고 그가 도착한 곳에는 마야, 그래서 그녀를 반원형으로 둘러싼 알몸의 홀가 여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악명 높은 정사 장면이 나왔다. 진짜 영화관에서 다 빵 터졌어... 정확하게 발랄하기는 했다. 정사를 나쁘지 않고 드러눕는 남녀를 둘러싼 여성들이 마야의 소음을 흉내 내며 한 관계에서 오는 공포 때문인지 담벼락에 손을 뻗는 마야의 손을 잡고 너무 무겁기도 하고, 사정의 순간이 되었을 때 크리스티안의 엉덩이를 밀어주며 직접 마지막을 내게 도와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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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박한 정사가 계속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동네로 돌아오다니... 오두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안 물어볼 수가 없구나.. 이웃 여자가 1,2번 이야기를 했지만 뿌리치고 가서는 결국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대니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만다. 다시 찾아온 공황 상태. 하지만 홀거 거리의 여자들은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맞추어 함께 눈물을 흘리다 호흡까지 공유하고 함께 슬퍼해 준다. 아마 극중 대니는 아내의 자식처럼 느꼈을 텐데, 정말 진지한지는 문제지만 공감과 위안은 위태로운 그녀를 완전히 삼키기에 충분했어요.한편, 정사가 마지막이고 뭔가 잘못됐어요.라고 깨달은 크리스티안은, 뛰쳐나와 과인이 된다. 오두막집 여자들은 아무도 그를 신경쓰지 않는다. 벌거벗은 채 밖으로 뛰쳐나왔거나 잔뜩 들어간 크리스티안. 놀랍게도 천장에 왜 사람의 시신이 묻혀 있다. 등의 살이 날개처럼 도려낸 채 눈이 있던 자리에는 꽃이 있는 해괴한 모습의, 한때는 인간이었던 끔찍한 시체는 이미 사라진 영국인 사이먼으로. 크리스티안은 그 가까이 몰려온 동네 사람들이 둔기에 맞아 정신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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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대니는 홀이 완전히 사람들과 동화되었다. 그들은 완전한 순환을 향하고 신에 9명의 제물을 바쳐야 한다. 9명의 제물은 너의 사람 외지인과 네 사람의 호르인 그 때문에 메이 퀸이 선택하는 한 사람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대니가 선택한 것은 크리스티안. 제물 속에서 침입자는 기이하게 사라진 사이먼, 코니, 조쉬, 마산이다. 또 호르 가인 4명은 랜덤으로 선택된 2과 지원한 두 사람이었다. 크리스티안은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끌려가 곰의 껍질을 산 채 받아 적는다. 그래서 노란색 삼각형 재단에 들어가 상점에서 제공된 제물은 동시에 불태워싱턴=신석호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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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토지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단 내에는 9구의 제물이 들어 상사이다. 인간이 없는 형태로 박제된 시체 6구와 곰의 가죽을 담지프오 쓴 크리스티안 지원하고 들어간 호르인 두 사람이 들어온 재단은 곧 불타게 된다. 홀 가인 두 사람은 '공포를 없는 린이 줄 약'을 먹었지만 산 채로 불에 타기 시작하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밖에서 비명 sound를 들은 홀가인들은 모두 자신들이 불타고 있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함께 슬퍼하고 있다. 완전히 무구한 재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대니에게 떠오른 것은 미소.


    영화를 본 후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예쁘기만 하다 포현할 수 있는 홀이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서 두려움을 넘어가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나쁘지 않고, 설령 대니에게 동화돼 어떤 위로와 위안을 느끼기도 한다. 나쁘지는 않다는 전자에 가까웠지만 굳이 말하자면 내가 극장에서 나쁘지는 않다고 느낀 것은 신랄함과 호르가인들에 대한 분노였다. 동시에 이 영화는 완전한 공포영화도, 완전한 힐링영화로도 볼 수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 같다. 첫번째는 대니의 심정 상태, 구체적으로는 대니와 크리스티 안니까 호가인의 관계였다. 2번째는 호강도 그 자체였다.


    대니에 대해서: 온몸에 "Vulnerable"을 붙이고 걸어야 할 것 같은 약함 스토리 전체에서의 관전 포인트는 대니의 심리 상태 혹은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이다. 영화에서는 홀가인의 보편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문화 속에 권태기를 맞은 커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극단적으로 묘사한다.(실제로 감독 앨리 아이스터는 연인과 이별의 길을 걸었던 몇 달간의 기억을 바탕으로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극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맡게 되는 대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녀의 연약하고 의존적인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영화에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단지 관객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원래 타고난 의존적인 개인지향이었던 대니가, 오랫동안 조울증을 앓고 있는 동생을 걱정하느라 '괜찮아'라는 느낌을 소홀히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한 잔의 외적인 소가족사에 전하려고, 멘탈이 약해진 정세 때문에, 대니는 소가족은 차치하고, "괜찮아"라는 느낌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졌을지도 모른다.혹은 마음이 여린 그녀는 외부의 충격에 약해 어떤 종류의 상실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물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소가족의 대나무 소리지만 연인과의 이별이 대니에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올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던 중, 위태로운 동생과 부모님까지 돌아가셨고, 대니는 이미 크리스티앙과 괜찮은 관계가 끝난 상태임을 알고 있다. 크리스티안과 대화할 때 항상 그가 해야 할 무언가를 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크리스티안과의 관계에서 칼을 쥐고 있는 것은 크리스티안이며 괜찮아는 엄연한 을임을 안다. 이어지는 맥락에서 그는 두 사람 관계에서 약자가 될 것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1개월 반이나 스웨덴으로 여행 갈지도 모른다는 스토리는 당연히 글씨들에게 당연히 먼저 언질을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티안은 이런 스토리가 friend 사이에서 오간 것에 대해 대니에게 일언반구 스토리가 없다가 우연히 대니가 friend로부터 소식을 듣게 된다. 이 부분은 충분히 대니가 "왜 나한테 스토리를 안 해줬어? 미리 나와 이 얘기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정도로 크리스티앙에게 들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이야기조차 크리스티안에게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고, 결국 꼭 죄송하다며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고 괜찮아의 심리상태보다 그를 살피기에 바쁘다.그녀의 모든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가족의 상실감은, 누가 겪어도 당장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무기력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고 해야 할 시기를 겪고 있다고 하지만 대니는 크리스티안과 함께 파티에 가기로 해요. 사람을 사귀는 것도 당장의 활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곧 사람들과 사교적으로 어우러져 억지로 파티에 가면 이야기를 나누는 대니의 선택은 온전치 않아 보인다. 권태기의 크리스티안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랫동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괜찮다가 크리스티안이 지칠까봐 아이로서의 활력을 얻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영화 초반 대니가 직접적으로 통곡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만연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니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운 무기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주 사소한 한마디라도 소가족을 떠올리면 쉽게 무너진다. 그런 대니는 마치 모래로 쌓은 탑과 함께 위험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겨우 묻어두려고 아이가 쓴 기억을 무의식중에 들춰내면, 한순간에 평온한 가면은 무너지고 그 속에 일그러진 속내가 드러난다. 그 순간 나타나는 대니의 울음소리가 섞인 얼굴은 그야말로 스토리에서 비참하고 괴로워 보인다.대니의 불안한 심리 상태는 극 중반까지 계속된다. 대부가 고장난 크리스티안과 프렌드는 함께 대마초를 해요. 이때 대니는 내키지 않지만 크리스티안이 자신 때문에 friend들과는 함께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꼭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때 호르가인 잉그마르의 권유로 간신히 대마초 대신 버섯차를 마시게 되는데 이것도 하나의 대마초와 대등한 환각효과가 있었다. 어쨌든 크리스티안과 프렌드, 펠레, 그리고 버섯차로 대마초를 대신한 대니까지 어떻게든 기운을 얻었을 때 펠레는 얼핏 이런 스토리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소가족 같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소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대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 곳을 찾아 도망쳐야 했다. 그녀의 불온한 심리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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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전체의 대가족이죠?그러나 극 후반부에 대등한 대사를 들은 대니의 반응은 완전히 상반된다. 메이크인이 되기 위한 춤은 그녀가 홀이 사람들에게 완전히 녹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제이다. 대니는 춤을 추면서 모르는 스웨덴어로 소통하고 춤추기 전에 모두 샘물을 마시는 호르가인의 의식을 배우며 호르가인을 닮아간다. 이윽고 메이 퀸이 된 뒤 같은 식탁에서 그녀에게 우리 전체의 대가족이 아니냐고 묻는 홀가인의 이 말을 들은 대니는 별로 동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이미 대니는 홀이 사람들에게, 이전에는 채우지 못했던 관계로부터 정을 채우고 있던 것은 아닐까.​


    크리스티안에 관해서는 약함의 연장선에 선 우유부단하지만, 크리스티안은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실은 아내 sound에게 영화를 본 직후에 본인은 크리스티안에 굉장히 이입되어 있었다. 본인도 크리스티안처럼 꽤 본인의 우유부단하고 회피적인 성격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당시 내가 느꼈을 때 크리스티안은 그저 지친 연인일 뿐이다. 마야와 정사를 가지게 된 것도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먹인(아마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액체 때문이지만, 그토록 잔인하게 제물이 될 만큼 그가 잘못을 한 본인...? 그럴 법도 하다... 사실 아무리 확실하게 애정을 나누는 관계라 해도 상대방의 아픔을 그대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대니와 연인 사이이니 가족 이상으로 친근한 관계를 유지했을 크리스티안이라면 오랜 시간 괴로워하는 그녀의 곁을 지키고 그 고통을 모두 함께 짊어지려 했을 것이다(그가 가장 최근에는 어떻든 꽤 본인 이름의 노력을 했다는 것은 초반에 친구들과 있을 때 대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보고 친구들이 설마, 역시 대니야라며 어이없는 표정에서 나온다. 무시하라고 외로워진 표정을 짓는 친구에게 일단 애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그녀의 전화를 받아보자고 제안하고, 본인은 크리스티안은 어쨌든 자신의 생각대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인한 확실한 헌신의 색깔은 언제나 원해도 이상하지 않다. 크리스티안은 친구 조쉬의 말을 빌리자면 극도로 회피적인 사람이었다 대학원생이라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로부터 회피하려 하고, 대니와 관계를 끝낼 서로 소원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끝을 내는 것이 어려워서 1년간 미적 거리 뿐이다.크리스티앙의 우유부단한 성격, 그래서 대니와 이어진 것이 틀림없는 일방적(으로 대니의 우울함을 짊어져야 함)인 관계를 고려한다면 어떤 누구에게나 지칠 수밖에 없다. 크리스티안이 그런 자연스러운 권태의 과정에 잘못이 있었다니 단순히 결단을 내리지 못한 우유부단함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솔직히 마지막 순간 희생양이 되어 불타는 크리스티안을 보았을 때, "아, 하지만 저건 좀..."이라고 내가 눈살을 찌푸렸던 것도 어느 정도 크리스티안으로 이입되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그러나 2번 감안하고 있다고,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서로 해가 되는 관계의 주범은 크리스티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사고를 고집하는 크리스티안이 대니에 피곤할 수밖에 없었고, 그 원인은 대니의 상황에 있었던 일을 제쳐놓고 둘의 관계를 그렇게 악화시킨 것은 크리스티 안지도 모른다.크리스티안은 어쨌든 연어 초반처럼 대니를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귀었던 연수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녀의 생일도 잊어버리고 한다 모두 sound가 뒤늦게야 비로소 깨닫고, 엉터리 케이크로 달래려 하고, 그 외에도 대니를 배려하지 않는 듯 무정한 태도는 영화 밖 관객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둘의 위험한 관계를 깨닫게 할 것이다. 이렇게 적본인처럼 권태감을 드러낼 만큼 그에게 sound가 사라진 상태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것이 여러모로 서로에게 좋다. 그러나 크리스티안은 섣불리 이별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둘 중 관계의 중단을 바라는 것은 크리스티 안 뿐이다. 관계 지속을 원하는 대니는 관계 유지를 위해 아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의 감정은 무시하고 그의 눈치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원하는 관계의 방향, 크리스티안만이 중단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오로지 관계 파국의 원인을 그에게 물어도 비약이 아니다.대니가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면서 크리스티안은 약해진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니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힘들 뿐 아니라 대니에게도 꽤 본인의 큰 충격이라고 생각해 섣불리 이별을 말하지 못했다고 가족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상황은 어떻든 본인은 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용인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연인관계를 계속하는 것이 본인의 선택이었다면 연인관계에 따르는 책임은 확실하게 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임의 선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 하는 관점에 따라 스펙트럼이 넓을 테지만, 가장 작고 크리스티안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모습은 적당한 연인으로서 기대역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선택에 따른 책임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응보가 모두 sound를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섭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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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극의 마지막이자 마을 사람들 완전히 밑거름이 된 대니와 홀이 사람들 사이에 혼자가 된 것은 크리스티안이었다.대니의 약함과 크리스티안의 우유부단함은 거의 비슷하다. 둘 다 어떤 방식으로든 본인의 약함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이 소이의 가면을 쓴 "본인의 약함"의 중국에서도 두 사람의 파국을 초래한 궁극의 주범은 크리스티안의 우유부단함지도 모른다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홀거에 대해서:인간의 원초적인 심연을 교묘하게 접하는 뒤틀린 공동체, 어쨌든 관계는 쌍방향이었다. 때론 누군가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어쨌든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는 홀이 사람들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파국을 맞았을 터인데, 이때 권태를 맞은 연인, 정확히는 나쁘지 않고 약한 대니 앞에 나쁘지 않아 나타난 홀이 두 사람의 변천을 촉진시킨다.그들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역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철학적 담론의 핵심을 적이 나쁘지는 않다.한/역시 노골적인 방법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힐링 영화로 느껴진다는 점도 인간의 감정 속에 깊이 존재하는 무언가를 건드리기 때문일 수 있다. 홀가인은 당일 보편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다소 비윤리적인 공동체지만 나쁘지는 않은 사람들의 풍습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소 옅은 자기식 철학적 원리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그렇다.가장 큰 예로서, 홀가인의 전술한 풍습으로 철학사 전체에서 화제가 되어 온 "죽sound의 공포에 대한 극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준 '72세 이상 고령자의 절벽 자카리아 원숭이 신'에서 외지인들에게 나쁘지 않프지 않고 풍습의 당위성을 역설하려는 홀이 장로는 이처럼 내용하는 것이다. 필연적인 죽음, sound를 학수고대한다면 부끄러운 일이었다.삶의 주기가 끝났을 때 마냥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는 것은 크게 나쁘지 않고 큰 영광이었다. 그런 숭고한 투신을 택하면 역시 다른 순환에 의해 새롭게 아이로 태어나 나쁘지 않고 인생을 영원히 이어갈 수 있다는 맹신은 어쩌면 죽는 sound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처럼 보였다.하지만 결국 그들은 완전히 이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망치로 인생이 끝나면 재미 없기 직전, 카메라에 잡혔다 노인의 두 눈은 오로지 공포에 떨며 타버리지 않는 제물이 되기를 자처한 호가의 두 사람은 사원에서 태워졌을 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역시 그들 앞의 공동체에서 약간 간 큰 플라톤의 이상 정부가 떠올랐다. 감독이 그들을 그릴 때 플라톤을 고려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공동체는 일부 플라톤의 이상행정부론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가령 '위대한 순환은 주기'에 대한 언급이라든가, '청년기에는 순례를 해야 하고 노년기에는 멘토가 되어야 한다'는 삶의 시기에 따른 역할 구분이라든가, 교미를 허락받은 남녀만이 출산을 위한 성관계를 할 수 있다는 점이나, 공동육아, 그 외에도 모두가 서로의 자매와 형제가 되는 소가족 형태 등이 그러했습니다.플라톤의 영향을 받든 어쨌든 이 공동체적 신앙은 고대 토착 신앙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이렇게 그들의 공동체를 보고 고대의 무엇인가를 산발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고대의 무엇인가는 당일의 보편적 윤리처럼 오랫동안 단련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이 체계를 구축한 고대 토착신앙, 그리고 이상사회론의 형태가 호르가의 것과 일부 비슷한 것은 요즘 시점에서 다소 까다로운 그들의 방식이 우리 인간의 매우 원시적인 무언가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배움이 짧고, 그 '무엇인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뭐 예를 들면 인간은 실은 공동육아재산공유 등을 향한 보편적 욕구가 있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위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확실한 것은, 영화 속에서 대니가 홀이 사람들과 동화될 수 있었던 것은, 홀가인으로부터도 아무도 받지 못한 진정한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홀가인은 투신하는 노인의 고통이 나쁘지 않다, 불타고 죽어가는 제물, 그리고 슬퍼하며 절규하는 대니의 아픔에 철저히 공감할 것이다. 호흡까지 닮아갈수록 서로에게 완전히 녹아든다. 특별히 나쁘지는 않은 의존적인 대니는 이렇게 마냥 나쁘지는 않다, 나쁘지는 않다는 느낌에 집중해 줄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공감해주는 공동체. 영화를 본 누군가가 이를 보고 힐링을 느꼈다는 이유도 그 안에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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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들에게서 받는 위안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않다고 소견할 것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공동체만을 위해 다른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여겨졌다. 그 자리에서 그들이 의식 때문에 바치는 제물 9명이 외지인 4명으로 구성됐다는 점도 그렇다. 보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풍습을 가지고 있는 것까지는 그렇더라도 그런 풍습을 이어가는 일은 그것을 이해하는 공동체 구성원들만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풍습을 잇기 위해 외지인을 희생시키는 일이 너무 많아 자연스럽게 계속 생각할 것이다.단지 축제 도중에 떠내려가고 싶어했다는 이유만으로 잔혹하게 영국인 2명을 살해한 모습, 그래서 마을 공동체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뉘우칠 기회도 주지 않고 조쉬와 마크를 잔혹하게 죽인 것은 아무래도 끔찍합니다.솔직히 말하면 과인은 홀가인들의 공감대로부터 얻은 대니의 평온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소견할 것이다. 호르가인은 작은 공동체다. 앞서고, 극중에서 조쉬가 지적했듯이 그 크기가 너무 적어 근친 없이 그 뒤를 잇기조차 어려워서 보 1만큼 보잘 것 없다. 그런 정세에서 지원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그들의 영속을 지원하는 외부인의 영입은 절대적 1것이었다 이어맥락에서 대니는 펠레,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철저히 계산되어 마을의 구성원이 입장한 외부에 보였다.사실 대니는 타관 사람과는 다른 인상을 주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가 나약한 것도 그렇지만 펠레과인의 마을 사람들은 교묘한 가스라이팅으로 그녀를 매료시킨다. 펠레는 스웨덴에 가는 첫머리에 그녀에게 나는 당신에게 공감한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나는 그녀를 흔들었다. 또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펠레는 사람을 많이 본다. 마을에 도움이 되는 사람(=대니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가치가 있고, 과인 후에는 제물로 바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소모품으로 가치가 있다)을 보고 데려온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대니에게만 기다렸다. 정말 기쁘다."와 같은 인사를 한다.대니는 그 마을을 통제하기 위해 모여야 하는 외부인이었다 만약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처지에 공감해 그녀가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면 그들은 크리스티안을 유혹해 마야와 정사를 시키지 않았을 것이고(마야와 크리스티안의 정사 또한 철저히 마을 공동체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근친 없이 공동체 구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시각 교미를 위해 외부인을 빌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그런 모습을 드러내 그녀에게 보여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그녀에게 가혹한 장면을 보인 것도 그녀의 감정을 바닥까지 다소움 흔들고 그녀가 제대로 그들에게 의지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한 장치 1지도 모른다.이처럼 철저한 계산 아래 본인의 공동체를 위해 외지인을 서슴없이 이용하는 이들은 절대적인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본인의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마을 안의 누구든 거리낌 없이 해칠 수 있다는 소견도 있다.어쨌든, 결국 그들의 계산대로 대니는 홀가인에 동화된다. 영화 마지막 불타는 건물을 보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한순간에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그녀의 모든 혼란이 끝난 소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결여된 공감을 얻으면서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짓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당장이라도 그 순구는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대니가 완전히 그들에게 침투할 수 있을지도 사고였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 시점에서 이 축제는 91중 41이 지났을 뿐이었다 남은 51칸 계속 충격 속으로 대니가 온전할 수 있을까? 만약 대니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조금이라도 어긋난 모습이 보인다면, 그들은 그녀를 그냥 내버려둘까? 확신할 수 없었다.아, 왜 그런 집단에 동화될 수밖에 없을까. 영화 밖 관객들은 그런 대니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아, 저런 정세에 저렇게 다가간다면 지나칠 수밖에 없다고 공감할 수도 있다. 대니의 선택이 그녀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는지, 영화 밖에서는 단지 추측만 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의 윤리기준과는 전혀 맞지 않는 몰상식한 행위를 하는 집단에서 위안을 구할 정도로 그녀는 심적으로 지쳐 있음이 분명하다. 제발 찾은 그녀의 평온이 어떻게든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궁금한 거 하나.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머슴이 되는 모습이 상당히 본인의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대니가 동네에서 보는, 자연히 하본인이 되는 환각이라든지, 식사 자리에서 그녀의 호흡에 맞춰 머리에 적힌 화관꽃이 숨쉬는 것처럼 보이는 환각이라든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 2. 밤마다 외지인들과 동네 청년들이 다함게 자는 방에서 아기의 울음 소리 가 들린다. 극 초반 아기 베개 밑에 칼을 넣어두는 동네 사람들의 장면도 볼 수 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 3. 뷔페 북유럽 신화와 허 루카의 문화가 밀접히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주서 한. 북유럽 신화는 평소부터 관념이 있기도 했다, 이 기회에 제대로 알고 싶다는 소견이 있다. ​ 4. 고려대 초반에 등장하는 대니의 방에 상당히 자신, 다양한 그림이 있다. 그림체라던지 인상이 뚜렷해서 잊을 수가 없었는데... 꽤 여러 본인이 있지만 기억 본인은 건달 그림이 많이 그려진 밝은 하 언제나 그랬듯이, 혹은 괴기한 모습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왠지 영화의 스토리와 직접 관련 있는, 의의 깊은 그림이었는데, 그 복선도 알아보고 싶다. ​ 5. 희생양이 제단에 들어가직쵸은이옷 본인. 마치 그냥 지나치듯 평온하게 할 줄 아는 동네 사람들 속에서 오열을 감출 수 없는 여자가 붙잡힌 적이 있었다.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다. 왜 울고 있었던가.. 어쩌면 그녀도 공동체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을 홀가인처럼 순환, 영예로운 행위로 받아들일 수 없지 않을까.​


    어떤 스토리든 쩨쩨하게 굴어?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매우 아름답다. 화려한 색감은 마치 아이폰 필터를 씌운 듯 한 화보 사진처럼 메컷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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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포스터도 이쁘다. 정스토리 예쁘다. 특히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왼쪽 포스터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일 수 있다.(여담이지만 친국은 저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 줄 알고 보려고 했다고 한다.) 또 정확히 포스터는 영화의 잔학성이 자신의 충격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본인이라 공식 포스터 말고는 몇 가지 알아봤어.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좀 더 직접적으로 재해석한 것은 위 포스터가 아닌가 싶다. 역시 벼랑 장면에 나오는 의식이 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정확히는 대부분의 사람(나를 포함)에게 벼랑 장면이 내용 충격적으로 느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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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진은 그냥 듣고 컴퓨터 벽화로 만들었습니다. 언제 다시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당분간은...!!​ 2.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크게 세가지 정도 자신 온 것 같다. 아내의 소리에 동생의 자살 장면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도 꽤 잔인했고, 둘째는 (악명 높은) 노인의 벼랑, 셋째는 죽은 사이먼이었다. 영화 후반에 닭장에 들어가 사이먼 시체를 발견하는 크리스티안의 시선에 따라 사이먼 시체를 자세히 비추는데, 이 또한 상당히 잔인했습니다. 미드 한니발의 시즌 1개 있는 회에서, 사람의 등을 깃털처럼 버리고(아니, 포효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지만...)내기 살인마의 일화가 떠오르곤 했습니다.... 어쨌든 끔찍한 장면이 그렇게 자신 있는 것은 절대적은 아니지만, 한 장면이 너무 강력해서... 존이 스토리를 잘 보는 사람이 보면 구역질이 꽤 날 것 같았다. 정말 1번 자신 올 때 적자처럼, 풀 쇼트에서 천천히 자신 온다. ​ 3. 이동징 평론가의 리뷰를 보니 이수 트리 자체는 분명한 것에 그 곳이었다는 것을 천천히 풀어 자신으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그 스토리가 딱 맞았어. 영화의 전개 자체는 매우 늦다.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앵글로 시종 진행되는 이 스토리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몰두해서 봐서 그런지 시간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영화의 전 줄거리를 알아갔기 때문에, 대체로 이 타이밍에 벼랑 씬이 자기 오는데에 자신이 있을까 하는 상상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대사와 자신씩 장면과 자신들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감독의 능력일까. 게다가 감독판이 개봉하면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소견도 있다. ​ 4. 비참하게 죽은 죠루 뵤크싱 남자 노인 분이 그 유명한 뵤룬·앙도레셍이옷다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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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꽃미남으로 유명했던 배우 분인데 청년기에 얻은 꽃미남 이미지가 갇혀버려서 정말 억울하다고 인터뷰한 걸 본 적이 있다. 앞으로 배우보다는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면서 지낸다고 본 기억이 있는데 영화에서 (사실 나는 당초에) 봐서 반가웠다. 그리고 등장한 장면은 짧았지만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비요른 안데르센을 떠올리면 이런 사진보다도..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를 것 같다. 좋은지 과미한지는 모르겠지만... 열연하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 5. 화은속히 번역가가 번역해 쇼쯔도라! 황 번역가 앞에 알리 아이스터 감독의 유전(저는 보지 못했지만)도 번역해 주셨다고 합니다. 소문으로 들은건 유전이 너무 무서워서 ᄏᄏᄏ 영상 주위에 귀여운 사진으로 결계시키고나서 번역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어.ᄒᄒ 그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같은 감독의 작품인 <미도소마>도 번역해줄 줄은 몰랐어.이번에는 어땠나요?​ 6.'눈을 뜬 자', 호르 가인들의 경전을 쓰는 인물인 루벤은 충격적인 비주얼로 선전에서도 자주 활용된 캐릭터이다. 실제로 유튜브에 Midsommar를 검색하면 루벤의 이미지를 サム네일로 한 영상이 꽤 있다. 그러나 루벤이 영화에서 등장했을 때 모두 1분에 안 된다... 그 역할 자체도 맥거핀이나 호가인의 참혹하게 거론성을 드러내기 위한 1회용 캐릭터에 "지과"에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좀 아쉬운 점은... 그다지 큰 비중이 있는 캐릭터는 아닌데, 단지 충격적인 비주얼만으로 홍보를 한 점> 그렇게 아이를 가진 아이를 엄청난 기세로 그렸다는 것... 음... 물론 루벤이 홀가인의 잔혹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근친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설정에 맞게 충격적인 외형을 갖추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방비 아이가 있는 아이를 이렇게 못생긴 특수분장으로 그려낸 것, 심지어 그 아이에게 많은 분량을 주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장아이 있는 캐릭터를 단순히 소모적으로 활용했다고 느껴서... 음~ 스토리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네 スクリーン오히려 스크린타이더를 많이 주거나... '어렵다!' (+)실제로 루벤 역을 맡은 배우는 특수분장을 한 아역배우이다. 이름은 Leventepuczkó-Smith. ​ 7. 어쨌든 미드 소마는 철야고 리뷰 쓸 만큼 여러 면에서 충격적인 리뷰를 반드시 남기고 싶었던 영화도 했습니다. 또 <아이즈와이드샷>도 보았다... 한 후기 보고서 미드소마 속 종교의식이 아이즈와이드샷을 연상시킨다는 스토리를 듣고 오정스토리?라며 관심을 갖고 시청을 시도했는데. 일단 다 보기는 봤어.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 머리로는 지금 당장 이해하고 글로 남기기 어려운 작품이었기 때문에...ᄒ...시청하면서 받은 충격과는 별도로 당장 글로 남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아이즈와이드샷은 간간이 오래 지난 뒤에 남기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미드소마> 리뷰를 열심히 썼을 뿐, 과인을 칭찬해 줘야지. 이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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